들어갈 때 맡겨두고, 떠날 때 돌려받는 신뢰의 약속.
일본에서 집을 계약할 때 레이킨과 세트로 붙어다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시키킨(敷金)이다.
처음 들어갈 때 기분 좋게 주는 선물같은 레이킨과 달리, 시키킨은 나중에 집을 나갈 때 돌려받아야 할 ‘내 돈’이다.
한국의 보증금과 비슷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일본의 시키킨은 나갈 때 청소비나 수리비라는 이름으로 꼼꼼하게 계산을 거친 뒤 남은 금액만 돌려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 돈을 미리 맡겨두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Etymology
- 敷 (깔 시): (바닥에) 깔다
- 金 (쇠 금): 돈, 자산.
단어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미리 깔아두는 돈’이다. 혹시라도 월세를 못내거나 방 어딘가를 망가뜨렸을 때를 대비해 집주인에게 미리 맡겨두는 예치금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나갈 때 다 돌려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집을 얼마나 깨끗하게 썼는지에 따라 돌려받는 액수가 달라진다. 마치 우리가 잠시 빌린 공간을 소중히 다루겠다는 약속을 돈으로 증명하는 것 같다.
The Courtesy of Exit
일본에는 ‘떠나는 자리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시키킨은 바로 이런 뒷모습을 챙기는 문화와 연결된다.
일본 사람들은 시키킨을 전액 다 돌려받으려고 애쓰기보다, 당연히 ‘청소비로 나가는 돈’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음 사람을 위해 방을 처음 상태로 깨끗하게 되돌려 놓는 것을 당연한 예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결국 시키킨은 단순히 맡겨둔 돈이 아니다. 내가 머물렀던 공간에 대해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성의의 표시이기도 하다. 방을 깨끗하게 쓰고 시키킨을 기분 좋게 돌려받는 과정은, 그 공간과 내가 맺은 관계가 성공적이었음을 의미한다.
시키킨은 공간과 나 사이의 믿음을 돈으로 보여준다. 돈을 미리 맡기는 행위는 “이 방을 소중히 아끼며 사용하겠다”는 조용한 다짐이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공간을 어떻게 아껴주고 있을까. 짐을 빼는 날, 우리의 손에 돌아올 시키킨은 어떤 모습일까.
돈의 액수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머물렀던 자리에 남겨진 따뜻한 온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