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지만, 그 순간이 인생의 단 한 번뿐인 장면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일까. 가끔은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거라 생각할 때도 있다.
Etymology
- 一期 (일기): 불교 용어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한 평생’을 의미.
- 一会 (일회): 단 한 번의 ‘만남’이나 ‘모임’.
직역하면 평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이다. 이 단어는 16세기, 고요한 다실(茶室)의 연기 속에서 태어났다.
설령 찻잔을 주고받는 주인과 손님이 여러 번 만나 차를 마실지라도, 오늘 이 자리의 바람소리,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찻잔의 온기는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단 한 잔의 차를 내놓으면서도 자신의 온 생애를 담아 정성을 다했다.
The Philosophy of Now
매일 아침 건네는 인사, 퇴근길에 마주치는 노을, 식탁 위에 놓인 밥상까지.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은 각기 다른 얼굴을 한 기적들이다.
어제와 같은 시간이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처럼 느껴지는 평범한 일상은, 매 순간이 작별이자 새로운 만남이 된다.
벚꽃이 지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듯, 영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깊은 애착이 이 단어 하나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이 단어를 대하는 태도에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허무함보다는, 그렇기에 ‘지금 눈앞의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코모레비‘가 완벽하지 않은 빛의 조각을 수집하는 마음이라면, ‘이치고이치에’는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의 조각들을 정성껏 대접하는 마음이다.
삶이라는 찻자리에 앉아,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풍경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도 완벽하게 복제될 수는 없다. 오늘 마신 커피의 향기, 누군가의 미소,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찰나도 인생의 유일한 ‘이치고이치에’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다음’을 기약하며 현재를 뒤로 미룬다. 하지만 삶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늘 ‘지금’이라는 좁은 틈새에만 존재한다.
당신은 오늘, 당신에게 찾아온 유일한 순간들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했는가?
오늘 마주한 사람과 풍경 중 무엇 하나 당연한 것은 없다. 당신 앞에 펼쳐질 어떤 순간에도, 당신의 진심이 깊게 머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