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NOTE #4. 敷金: The Sincerity of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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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 때 맡겨두고, 떠날 때 돌려받는 신뢰의 약속. 일본에서 집을 계약할 때 레이킨과 세트로 붙어다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시키킨(敷金)이다.처음 들어갈 때 기분 좋게 주는 선물같은 레이킨과 달리, 시키킨은 나중에 집을 나갈 때 돌려받아야 할 ‘내 돈’이다. 한국의 보증금과 비슷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일본의 시키킨은 나갈 때 청소비나 수리비라는 이름으로 꼼꼼하게 계산을 거친 뒤 남은 금액만 돌려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 돈을 미리 맡겨두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Etymology 단어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미리 깔아두는 돈’이다. 혹시라도 월세를 못내거나 방 어딘가를 망가뜨렸을 때를 대비해 집주인에게 미리 맡겨두는 예치금이다.그래서 원칙적으로는 나갈 때 다 돌려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집을 얼마나 깨끗하게 썼는지에 따라 돌려받는 액수가 달라진다. … Read more

JP NOTE #3. 礼金: The Price of Grat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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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타인의 공간에 머물기 위해, 우리는 때로 감사라는 이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본에서의 정착을 결정하고 마주하게 된 서류더미. 그중에서도 부동산 계약서 위에 적힌 레이킨(礼金, 사례금)이라는 단어는 유독 낯설다. 한국의 전세나 월세가 익숙한 우리에게, 신뢰의 담보로 맡겨두는 보증금이나 집을 빌려쓰는 대가 외에,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금를 따로 내야한다는 사실은 차별이나 사기 등 많은 의문을 품게 한다. 이것은 단순히 지출해야 할 비용의 문제일까, 아니면 이 사회가 오랫동안 지켜온 보이지 않는 질서의 일부일까. Etymology 문자 그대로 사례하는 돈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집 구하기가 어려운 시절, 집을 빌려준 주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건네던 관습이 현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시키킨(敷金)과 달리 퇴거 시 절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비용이라는 점이 우리를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점이다. Silent Selection 현재는 일본 … Read more

JP NOTE #2. 侘び寂び: 완벽이라는 강박을 내려놓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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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학을 지탱하는 가장 고요한 기둥, 와비사비(侘び寂び).우리는 종종 완벽함이라는 매끄러운 표면만을 쫓곤 한다. 매끈하게 닦인 대리석과 결점 없는 완벽함에 박수를 보내도록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마음이 고요하게 머무는 곳은 어디일까. 시간이 흐른 뒤 우리 마음을 더 깊게 건드리는 것은 무엇일까.흠집 하나 없는 대리석 바닥이나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쇼윈도의 새 물건보다는, 손길이 닿아 반질반질해진 나무 탁자의 모서리나 빛바랜 사진첩의 질감에 우리는 더 쉽게 마음을 연다. Etymology 16세기, 화려함을 거부하고 자연 그대로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다인(茶人) 센노리큐(千利休)에 의해 완성된 이 미학은, 인위적인 힘을 뺀 자리에 남는 평온을 말한다. The Philosophy of Imperfection 와비사비는 단순히 ‘낡은 것이 좋다’는 향수가 아니다. 와비사비는 ‘영원한 것은 없으며, 완벽한 것도 없다’는 자연의 섭리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 Read more

JP NOTE #1. 一期一会: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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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지만, 그 순간이 인생의 단 한 번뿐인 장면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일까. 가끔은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거라 생각할 때도 있다. Etymology 직역하면 평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이다. 이 단어는 16세기, 고요한 다실(茶室)의 연기 속에서 태어났다.설령 찻잔을 주고받는 주인과 손님이 여러 번 만나 차를 마실지라도, 오늘 이 자리의 바람소리,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찻잔의 온기는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단 한 잔의 차를 내놓으면서도 자신의 온 생애를 담아 정성을 다했다. The Philosophy of Now 매일 아침 건네는 인사, 퇴근길에 마주치는 노을, 식탁 위에 놓인 밥상까지.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은 … Read more

JP NOTE #0. 木漏れ日: Dappled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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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그늘에서, 빛의 부서짐을 보다. 일본의 계절을 거닐다 보면, 문득 낯선 공기가 따스한 조각들로 부서져 내리는 순간을 마주한다. 머리 위를 덮은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제멋대로의 모양을 그리며 바닥에 내려앉는 풍경. 그 얼룩덜룩한 빛의 무늬를 이곳에서는 木漏れ日(코모레비)라 부른다. 단순히 날씨가 맑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나무와 빛과 바람이 만들어낸 찰나의 흔적은, 보는 이의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혀 준다. Etymology 단어를 뜯어보면 흥미로운 동사가 하나 숨어 있다. 새다(漏れる)이다. 쏟아지는 빛이 나무라는 장애물을 만나 섬세하게 걸러져 스며 나오는 모양새. 일본인들은 빛이 충분히 공급되는 상태보다, 무언가에 가로막혀 겨우 ‘새어 나오는’ 그 연약한 상태에 주목했다. 압도적인 빛의 승리가 아니라 빛과 어둠의 타협점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더 깊은 애착을 느낀 것이다. The Beauty of Imperfection 일본의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