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미학을 지탱하는 가장 고요한 기둥, 와비사비(侘び寂び).
우리는 종종 완벽함이라는 매끄러운 표면만을 쫓곤 한다. 매끈하게 닦인 대리석과 결점 없는 완벽함에 박수를 보내도록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마음이 고요하게 머무는 곳은 어디일까. 시간이 흐른 뒤 우리 마음을 더 깊게 건드리는 것은 무엇일까.
흠집 하나 없는 대리석 바닥이나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쇼윈도의 새 물건보다는, 손길이 닿아 반질반질해진 나무 탁자의 모서리나 빛바랜 사진첩의 질감에 우리는 더 쉽게 마음을 연다.
Etymology
- 侘び (와비): ‘부족함’이나 ‘가난함’을 의미했지만, 다도(茶道)를 통해 비우고 덜어낸 자리에서 느끼는 정신적 풍요로움을 의미하게 되었다.
- 寂び (사비): 시간이 흐르며 낡고 쇠퇴해가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직역하면 ‘투박하고 소박한 것이 지닌 세월의 흔적’이다.
16세기, 화려함을 거부하고 자연 그대로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다인(茶人) 센노리큐(千利休)에 의해 완성된 이 미학은, 인위적인 힘을 뺀 자리에 남는 평온을 말한다.
The Philosophy of Imperfection
와비사비는 단순히 ‘낡은 것이 좋다’는 향수가 아니다. 와비사비는 ‘영원한 것은 없으며, 완벽한 것도 없다’는 자연의 섭리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용기다.
금이 간 찬잣을 황금으로 메워 그 상처를 오히려 예술로 승화시키는 ‘킨츠기’처럼, 와비사비는 우리의 결핍과 상처를 숨겨야 할 부끄러움이 아닌, 나만의 고유한 역사로 긍정하게 한다.
완벽이라는 강박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보다는 조금 투박한 뚝배기가 주는 온기. 빽빽한 도심의 빌딩 숲보다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코모레비의 불규칙한 빛 조각들이 우리를 더 숨 쉬게 하는 것과 같다.
이치고이치에가 찰나의 인연을 정성껏 대접하는 마음이라면, 와비사비는 그 인연이 남긴 낡고 바랜 흔적들까지도 너그럽게 품어 안는 마음이다.
삶은 결코 매끄러운 수평선이 아니다. 굴곡진 길을 지나며 생긴 마음의 주름과 흉터는, 당신이 그만큼 치열하게 삶을 사랑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가 조금은 부족하고 어설펐을지라도 괜찮다. 그 빈틈이야말로 당신이라는 존재가 가장 자연스럽게 빛날 수 있는 와비사비의 순간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