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NOTE #6. 物の哀れ: 스쳐지나가는 것들에 대한 다정한 슬픔

신축 빌딩의 서늘한 유리 외벽과 예리한 직선은 시각적으로 완벽한 질서를 보여주며 시선을 끈다. 하지만 이런 인위적인 완벽함이 주는 자극은 일시적인 감상에 그친다. 정작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해 질 녘 창가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나 바람에 힘없이 흩날리는 낙엽의 뒷모습을 때가 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결국 소멸한다는 진리 앞에, 우리는 허무가 아닌 아련한 정취를 느낀다. 이것이 바로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다. Etymology 직역하면 ‘사물에 깃은 비애’다. 18세기 일본의 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세상의 만물을 마주할 때 가슴 깊이 차오르는 감성”이라 정의했다. 즉, 모노노아와레는 단순히 슬픔 감정이 아니라, 세상의 만물을 마주하며 가슴 깊이 차오르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인 셈이다. The Sensitivity to Ephemera 이치고이치에가 단 한 번뿐인 순간에 대한 집중이라면, 모노노아와레는 그 순간이 결국 지나가 버릴 … Read more

JP NOTE #5. 金継ぎ: 깨진 틈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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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끄러운 새 그릇은 아름답지만, 그것은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품고 있지 않다. 진정한 이야기는 뜻 밖의 실수로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순간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깨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이고, 그 벌어진 틈을 오히려 찬란한 금으로 채워 넣는 기술, 킨츠기(金継ぎ). Etymology 직역하면 ‘금으로 잇다’는 뜻이다. 15세기 일본, 깨진 찻잔을 수선하던 도중 탄생한 이 기법은 단순한 수리를 넘어선다. 상처를 숨기거나 수치스럽게 여기는 대신, 그 굴곡을 금빛 선으로 도드라지게 드러냄으로써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The Art of Scar 무결한 대리석이 우리를 압도한다면, 킨츠기된 찻잔은 우리를 위로한다. 상처를 입기 전보다 더 단단해진 이음새, 이전의 모습으로는 결코 가질 수 없었던 불규칙한 금빛 선들은 말해준다. “부서졌다는 사실이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와비사비의 정신이 가장 … Read more

JP NOTE #4. 敷金: The Sincerity of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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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 때 맡겨두고, 떠날 때 돌려받는 신뢰의 약속. 일본에서 집을 계약할 때 레이킨과 세트로 붙어다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시키킨(敷金)이다.처음 들어갈 때 기분 좋게 주는 선물같은 레이킨과 달리, 시키킨은 나중에 집을 나갈 때 돌려받아야 할 ‘내 돈’이다. 한국의 보증금과 비슷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일본의 시키킨은 나갈 때 청소비나 수리비라는 이름으로 꼼꼼하게 계산을 거친 뒤 남은 금액만 돌려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 돈을 미리 맡겨두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Etymology 단어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미리 깔아두는 돈’이다. 혹시라도 월세를 못내거나 방 어딘가를 망가뜨렸을 때를 대비해 집주인에게 미리 맡겨두는 예치금이다.그래서 원칙적으로는 나갈 때 다 돌려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집을 얼마나 깨끗하게 썼는지에 따라 돌려받는 액수가 달라진다. … Read more

JP NOTE #3. 礼金: The Price of Grat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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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타인의 공간에 머물기 위해, 우리는 때로 감사라는 이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본에서의 정착을 결정하고 마주하게 된 서류더미. 그중에서도 부동산 계약서 위에 적힌 레이킨(礼金, 사례금)이라는 단어는 유독 낯설다. 한국의 전세나 월세가 익숙한 우리에게, 신뢰의 담보로 맡겨두는 보증금이나 집을 빌려쓰는 대가 외에,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금를 따로 내야한다는 사실은 차별이나 사기 등 많은 의문을 품게 한다. 이것은 단순히 지출해야 할 비용의 문제일까, 아니면 이 사회가 오랫동안 지켜온 보이지 않는 질서의 일부일까. Etymology 문자 그대로 사례하는 돈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집 구하기가 어려운 시절, 집을 빌려준 주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건네던 관습이 현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시키킨(敷金)과 달리 퇴거 시 절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비용이라는 점이 우리를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점이다. Silent Selection 현재는 일본 … Read more

JP NOTE #2. 侘び寂び: 완벽이라는 강박을 내려놓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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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학을 지탱하는 가장 고요한 기둥, 와비사비(侘び寂び).우리는 종종 완벽함이라는 매끄러운 표면만을 쫓곤 한다. 매끈하게 닦인 대리석과 결점 없는 완벽함에 박수를 보내도록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마음이 고요하게 머무는 곳은 어디일까. 시간이 흐른 뒤 우리 마음을 더 깊게 건드리는 것은 무엇일까.흠집 하나 없는 대리석 바닥이나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쇼윈도의 새 물건보다는, 손길이 닿아 반질반질해진 나무 탁자의 모서리나 빛바랜 사진첩의 질감에 우리는 더 쉽게 마음을 연다. Etymology 16세기, 화려함을 거부하고 자연 그대로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다인(茶人) 센노리큐(千利休)에 의해 완성된 이 미학은, 인위적인 힘을 뺀 자리에 남는 평온을 말한다. The Philosophy of Imperfection 와비사비는 단순히 ‘낡은 것이 좋다’는 향수가 아니다. 와비사비는 ‘영원한 것은 없으며, 완벽한 것도 없다’는 자연의 섭리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 Read more